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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산란계의 변명(辨明)

기사승인 2017.10.18  22: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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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시 오창읍 산단관리과장 한현구

근래 우리 산란계는 ‘살충제 검출’이란 전국적인 이슈로 큰 고초를 겪었다. 문제가 된 성분을 비껴간 동료들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비명에 죽어가야 했다. 수많은 달걀들이 폐기처분됐다.
나 또한 운수가 좋지 못해 같은 신세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냥 눈 감기에는 너무 억울해 산란계의 입장을 변명하고 나의 운명을 맞이하려 한다.

당초 이 사단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어느 먼 나라에서 불거졌으며 이미 그곳은 수그러든 것으로 알고 있다. 한데 이 땅에서는 아직 멀쩡한 달걀까지 종종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 있고 그 달걀을 낳은 닭들 또한 바라보는 눈이 예전과 같지 않게 싸늘하다.

지난겨울에는 추위보다 혹독한 AI(조류 인플루엔자)로 수많은 동료들이 주검이 됐다. 동절기가 지나도 조류독감이 계속되는 이변으로 아까운 목숨들을 속절없이 내맡겨야 했다. 그 여파로 계란 파동이라는 일찍이 보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달걀을 항공기로 다급하게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폭등하던 달걀값이 안정세를 되찾는가 했는데 살충제 성분이 나오면서 널리 사랑받던 달걀과 우리 산란계의 신세가 이토록 한심하게 될 줄이야.

이번에 법적으로 금지된 살충제 성분이 나를 비롯한 동료들, 그리고 우리가 낳은 계란에서 나온 것은 우리 산란계의 책임이 아닌 우리를 키운 농장주의 잘못이거나 실수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 지자체나 관련 기관의 책무도 전혀 묵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다른 데에 있다. 바로 소비자의 잘못된 인식이다. 오랜 기간 싼값으로 완전식품인 계란을 사 먹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온 편리한 의식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산란계는 종전에 누리던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흙 목욕할 자유나 닭장 밖을 돌아다닐 권리를 인간들이 빼앗았고 이제는 A4용지 크기의 케이지에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알 낳기만 강요당하고 있다. 지난날에는 맛 좋은 지렁이와 신선한 풀, 때로는 알곡까지 먹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맛 모를 사료와 물만이 우리의 주된 식단이다.

잃고 나니 자유와 권리가 한 꾸러미이고 소중한 줄 알겠다. 우리 닭들도 펭귄이나 타조나 다른 동물들처럼 알을 낳아 품고 새끼들을 거느리고 나들이 다니고 싶다.

내가 햇병아리였을 때 나는 암컷이라는 이유로 살아남고 옆에 있던 친구는 수컷이란 이유로 생을 바로 마감했다. 목숨을 앗지 않고 알 잘 낳는 닭으로 취급해주는 것으로 자족하며 사는 게 맞는 것인가.

문득 일찍 간 그를 떠올리며 같은 닭장에서 나와 같은 처지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자니 신세가 처량해진다. 닭똥 같은 눈물이 눈앞을 가린다. 뜨거운 눈물이다. 아니다. 우리 동족들은 원래 눈물이 없다. 그저 느낌일 뿐이다.

무릇 그것이 감자 한 알, 벼 한 포기, 계란 한 개일지라도 하늘과 땅과 사람의 뜻과 정성이 한껏 모이고 어우러져 맺은 결실이기에 아주 소중하지 아니한가. 매일같이 보거나 먹는다고 흔하다고 결코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될 생명이고 존재들이다. 그것이 농·축산물이 됐건 무엇이 됐건, 제값을 치르고 취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인간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 땅의 닭들이여! 비록 내가 제명에 못 죽는 일이 생겨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세상에는 우리를 하잖게 보는 인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중하게 대하거나 귀히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내일의 희망을 닭 가슴에 품고 오늘도 힘 있게 알 낳은 권리와 의무를 다하길 바란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깃털을 헤친다. 부디 병마를 피하고 이겨내어 폐계닭이 되는 그날까지 살아남길 염원한다.”

한현구 dynews@dynews.co.kr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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