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볼만한 영화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설 연휴 ‘대목’을 맞은 극장가가 ‘스크린 전쟁’에 돌입했다. 국내 4대 투자배급사가 내놓은 기대작은 물론 전 세계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 마블스튜디오의 히어로영화까지 가세해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개봉해 관객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의 짧은 연휴 기간 가족들과 함께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 한편을 관람하며 연휴 분위기를 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영화는 물론 전 세계 관객의 이목을 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까지. 설 연휴 극장가를 뜨겁게 달굴 개봉작들을 미리 만나보자.
 <편집자>

 


- 묵직한 울림 주는 시대극
●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남자
오는 14일 지난해 10월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故)김주혁의 유작인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남자’가 개봉한다.
고전 ‘흥부전’을 재해석한 이 영화는 조선 헌종 때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작자 미상인 흥부전을 흥부(정우 분)가 지었고 소설 내용은 유력한 세도정치가 조항리(정진영)와 민중의 정신적 지주 조혁(김주혁) 형제의 사연에서 비롯됐다. 이 소설을 읽은 민초들의 힘이 궁중정치의 흐름을 바꾼다. 결국 백성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사회적 메시지가 묵직하게 담겼다. 제18대 품바 문정수가 연희감독을 맡아 꾸민 세 차례 마당극과 궁중연희가 볼거리다.
김주혁과 정진영은 물론 사극에 처음 도전한 정우까지 배우들 연기는 흠잡을 데 없다. 천우희는 남장을 한 채 흥부의 조수 역으로 특별출연해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세 차례 마당극과 궁중연희가 볼거리다. 밥주걱을 휘두르는 형수에게 다른 편 뺨을 내밀고, 꿈과 희망을 놓지 않도록 독려하는 고(故) 김주혁은 팬들의 눈시울을 붉힐 만한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준다.

 

- 믿고 보는 김명민·오달수 조합
●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지난 8일 개봉해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은 자타공인 최고의 명탐정 김민(김명민)과 그의 조수 서필(오달수)의 유머가 돋보이는 영화다. ‘조선명탐정’’ 시리즈의 세 번째 에피소드다. 이번엔 멀쩡한 사람들이 불에 타 죽는 기이한 사건이 주어진다.
시리즈 전편들 역시 설 연휴에 개봉해 흥행순위 수위를 다퉜다. 1편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이 478만명, 2편 ‘사라진 놉의 딸’(2015)은 387만명을 동원한 강자다. 이번 편에선 정체불명의 여인 월영(김지원)이 수사에 적극 참여하고, 판타지·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하는 등 전편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부조리를 꼬집는 예리함은 전편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민초들의 삶이 우선이라는 시리즈의 최종적 메시지는 변함없다.
조선명탐정은 한국형 시리즈물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미엔 다음 편을 예고하는 일종의 쿠키영상도 들어있다. 전하는 메시지나 시리즈의 형식적 진화를 떠나, 김명민·오달수 콤비에게 호흡을 맡기고 가볍게 관람하기에 맞춤한 영화다.

 

- 달리고, 달리는 강동원의 범죄 스릴러
● 골든슬럼버’
오는 14일 개봉하는 ‘골든슬럼버’는 흥행 요소를 두루 갖췄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동명의 일본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인 데다, 범죄 스릴러 장르라는 점, 흥행보증 수표로 통하는 강동원이 원톱이라는 점 등이 관객의 구미를 당긴다. 순박하고 소탈한 택배기사 건우를 연기한 강동원은 쉴 새 없이 쫓기며 달리다가 1인 2역까지 한다. 유력 대선후보를 암살했다는 누명을 쓴 건우가 그를 검거하려는 정보요원들에게 쫓기는 이야기다.
음모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과 추격전을 지켜보는 재미가 영화를 이끈다. 건우와 그를 돕는 친구들간 우정과 추억의 드라마를 보탰다. 광화문과 신촌로터리 등 서울 시내 한복판으로 장소를 옮겼고, 최근 적폐청산의 대상인 권력기관을 은근히 꼬집는 등 한국사회 현실을 비추는 장면이 등이 등장하는 등 동명 원작의 일부 설정과 결말 등을 한국적 정서에 맞게 변화를 줬다.
영화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는 강동원의 변신이다. 강인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남자를 연기한다. 그는 이를 통해 소시민의 불안한 삶, 그리고 우정을 보여준다.

 

- 웃음 뒤 숨은 무거운 현실 비판
● 염력
‘염력’은 초능력을 소재로 한 코믹 판타지다. 아버지 석헌(류승룡)이 갑자기 생긴 초능력을 이용해 딸 루미(심은경)와 이웃들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루미가 운영하는 치킨집이 재개발로 철거될 위기에 놓인다는 설정에서 시작해, 갈수록 블랙 코미디와 현실 비판에 무게가 실린다. 용산참사와 철거민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많다.
당초 설 연휴 흥행 강자로 예상됐지만 지난달 31일 개봉 이후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혹평으로 기울면서 다소 힘을 잃었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만 보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판타지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무거운 주제에 당황할 수도 있다.
감독의 기지와 재기발랄함, 유머 코드가 곳곳에 담겨있지만, 기저에는 결코 가볍게 웃고 지나갈 수 없는 철거민 문제, 무자비한 공권력에 대한 비판 등이 깔렸다.
그렇다고 영화가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류승룡이 웃음의 8할을 담당한다. 염력을 발휘할 때 짓는 과장된 표정은 주요 웃음 포인트다. 그는 온 얼굴을 찌푸리거나, 다리를 배배 꼬고, 혀를 날름날름 거리며 힘을 발휘한다. 스케일은 크지 않지만, 컴퓨터 그래픽(CG)으로 표현된 초능력 장면도 매끄러운 편이다.

 

- 흑인 통념 뒤집는 마블의 새로운 영웅
● 블랙팬서
탄탄한 고정 팬층을 보유한 마블 스튜디오의 올해 첫 영화 ‘블랙 팬서’가 오는 14일 개봉한다.
영화의 배경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금속 ‘비브라늄’을 보유한 와칸다 왕국. 이곳의 왕 ‘티찰라’(채드윅 보스만)는 비브라늄을 노리는 음모가 세계를 위협하자 블랙팬서로 변신해 전쟁에 나선다.
블랙팬서란 와칸다 왕국의 최고 전사에게 부여되는 호칭이다. 비브라늄 수트를 입은 블랙팬서는 와칸다의 첨단 과학과 무술로 적들을 서늘하게 만든다.
마블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히어로가 단독 주연을 맡았고 흑인 인권에 대한 메시지를 담는 등 여러 면에서 신선한 히어로물이다. 4월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전투 장면이 와칸다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만큼 ‘예습’ 차원에서 기다리는 팬들도 많다.
블랙팬서에 대한 기대감은 역대 마블 영화 중 최고의 예매량에서 확인됐다. 북미 개봉 첫 주에만 1억2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둘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역대급인 ‘스파이더맨: 홈커밍’(1억1700만 달러), ‘닥터 스트레인지’(8505만 달러)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 순수함에 담긴 작지만 큰 교훈
● 패딩턴 2
지난 8일 개봉한 ‘패딩턴 2’가 설 극장가 최대 복병으로 떠올랐다. 영국의 국민동화 ‘패딩턴 베어’를 토대로 한 코미디 영화인 패딩턴2는 1편에서 영국 런던의 한 가정에 정착한 곰돌이 패딩턴(벤 위쇼)가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았다.
어느덧 런던 생활 3년차에 접어든 곰돌이 패딩턴은 루시 숙모의 100번째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도둑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간다. 험악한 범죄자들이 득실대는 교도소지만 특유의 선한 마음과 예의, 오렌지 마말레이드 만드는 솜씨로 죄수들을 사로잡는다. 동료 죄수들과 힘을 합쳐 교도소를 빠져나온 패딩턴은 팝업북 도난사건의 실제 범인을 뒤쫓는다.
동네 사람들은 패딩턴이 체포돼 경찰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는 과거 패딩턴의 착한 행동들마저 깎아내리는 모습 등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처럼 패딩턴의 무한한 순수함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간사한 본성을 에둘러 꼬집는다.
패딩턴의 귀여운 몸짓과 요절복통 사건들이 관객을 쉴 새 없이 웃긴다. 웃음 뒤엔 흐믓한 여운이 있다. 패딩턴을 식구로서 아끼는 브라운씨 가족의 애정, 착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면 언젠가는 사람들 마음이 움직일 거라는 패딩턴의 굳은 신념 등이 작지 않은 교훈과 감동을 준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