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 압수수색에 소방관들 ‘침통’
“목숨 걸고 불 껐는데…자괴감” 탄식
“소방관에 잘못 전가 말아야” 비판도

▲ 2017년 12월 25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제천소방서 및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헌화를 마치고 묵념하고 있다.

(동양일보 장승주 이도근 기자) 29명의 희생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와 관련, 경찰이 15일 소방당국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참사 당시 소방당국의 늑장·부실 대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지만 일각에선 현장 대응 시스템 개선 등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채 소방관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충북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오전 도소방본부와 소방종합상황실, 제천소방서 등 3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번 소방본부의 압수수색은 1992년 4월 본부 설치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며, 제천소방서 역시 1979년 개청 이래 39년 만에 처음 겪는 수모다.

경찰 관계자는 “소방서로부터 관련 서류를 임의 제출받는 방법도 있지만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인 데다 유족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신뢰와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압수수색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달 21일 오후 3시 53분 첫 신고 이후 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 무선은 과연 불통이었는지, 2층 진입 지연에 대한 잘못은 있는지 등을 낱낱이 따져볼 방침이다.

제천 화재 참사 이후 큰 충격에 빠졌던 소방 직원들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인명 피해를 초래한 죄인들이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느냐”며 자리를 급히 피했다.

충북경찰청 수사본부가 제천 화재 참사와 관련 제천소방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15일 오전 제천소방서 소방대원들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천 화재 참사 현장에서 진화와 구조를 맡았던 제천소방서 직원들도 첫 압수수색에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제천 참사 이후 화재 현장으로 출동할 때마다 불안해하고 긴장하는 대원들의 모습이 역력하다”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자괴감이 든다며 그만둬야겠다고 말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각에선 압수수색과 관련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소방관들만 나무랄 게 아니라 전반적인 체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 한 달이 가까워지지만 현장에서 화마와 사투를 벌였던 소방관들 상당수는 심리적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 산하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 최인창 단장이 지난달 25일 사업단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한 소방관은 “현장에서 밥 한 끼 못먹고 추위에 떨고 있을 동료를 위해 분식집에 들렸다가 대처를 잘 하지 못한 소방관들에게 ‘죽일 놈들’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도망쳐 나왔다”고 비참한 심경을 토로했다. 최 단장은 “소방관들이 슈퍼맨이길 기대하지만, 슈퍼맨이기 이전에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며 소방관 처우 개선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초동대처가 미흡했다는 비판 속에서도 고질적인 인력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 노후화된 장비는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실제 충북의 소방인력은 정원의 절반도 확보되지 못했고, 제천의 경우엔 출동인력이 34명에 불과했다. 대형화재를 진압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제천은 인력부족 탓에 운전요원 1명이 소방차 2대를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이 딸려 현장에선 운전요원이 펌프도 조작하고 불도 끄고, 모든 구조 활동에 투입되는 현실인 셈이다. 몇 안 되는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작전은커녕 불끄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완벽한 구조활동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2017년 12월 21일 화재가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소방대가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인력난 속에 지휘관을 제대로 길러낼 체계적인 교육도 부족한 것도 이번 화재 참사의 신속한 초기 대응을 어렵게 한 한 요인으로 꼽힌다. 필수적인 현장 인력 등 소방인력 전반에 대한 증원도 필수적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난 4일에는 제천의용소방대원 470명이 화재 참사의 부실한 초동대응을 지적하는 정치인들에게 호소문을 내기도 했다. 김면식 제천의용소방대 회장은 “제천 화재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도 시민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소방의 무능’을 지적하며 정치적 이슈로 몰아가고 있지만 제도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