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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에세이-그리운 시어머님

기사승인 2018.01.14  19: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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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영란 <청주시 원예유통과 도매시장TF팀장>

올 해는 유난히 한파가 맹위를 떨치며 우리의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하고 있다.

퇴근시간은 다가오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하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이 맘 때가 되면, 3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생각난다.

시어머니는 몸매는 뚱뚱하시면서 포근한 마음씨를 가지고 계셨으며, 아들만 다섯, 딸 복도 참 없으신 분이셨다. 딸 있는 집은 비행기를 태워준다고 하는데, 아들은 든든한 맛만 있는 것 같다. 가끔씩 나를 딸처럼 여기셨던 시어머니,

다섯 아들 중 넷째인 나의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착하고 부모 속 아프지 않게 하는 효심 깊은 자식이었다.

친정어머니는 산후조리를 해 줄 수 없는 형편이라, 시어머니께서는 넷째 며느리인 나에게만 산후조리를 해 주셨다.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놓으시고, 하루 24시간 중 시간을 정해놓고 6시간마다 4회씩 미역국을 꼭 차려주셨다. 오후 3시도 좋고, 새벽 5시도 좋고 미역국을 보약처럼 챙겨 주셨다.

새벽에는 자는 시간이라 낮에 깨어있는 시간만 먹으면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안 된다”고 하시면서,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그 때는 너무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하시는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큰 형님 댁을 떠나면 큰 일이 난다고 생각하여 큰집을 떠나신 적이 없으시다. 자식이 다섯이나 있으면서 이아들 저 아들 집에 다닐 만도 한데, 갈 생각조차 안하신다. 그나마 우리 집에 한동안 계셨던 것도 산후조리 때문이었다.

치매가 오게 되면서 일상생활이 불편하셨고,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쳐 병원 들어가게 되면서 집으로 오신 적이 없으셨다. 집에 그렇게 가고 싶으셨는데,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못 가시게 되었다. 사람이 태어나 시간이 흘러 80대가 되면, 똑같아진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시어머니가 나의 훗날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에 잠겨 본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큰 형님은 병원 밥이 맛이 없다고 하여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물김치, 고추장 멸치 등을 항상 준비해 주셨다.

신랑과 나는 어머님을 매주 찾아갔다. 손, 다리도 주무르고 머리 지압도 해드리고 말도 나누어주며... 나중에는 시어머니가 기억을 점점 잊어버리셨다. 똑같은 말만 물어보시고, 그 때마다 힘들었지만 일일이 답을 다 해드렸다.

특히 손톱을 자주 깎아드렸다, 손톱은 살이 아프지 않게 천천히 잘 깎아야 한다. 내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손톱을 깎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오른 손 깎을 때는 오른 쪽으로 와서 깎아드리고, 왼 손 깎을 때에는 반대쪽으로 자리를 옮겨 몸짓을 움직여 가며 깎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 손을 자주 주물렀다. 시어머니의 손과 발은 옛날 분이라 그러신지, 유독 작았다.

“어머니, 작은 손이 너무 예뻐요”라고 하면 시어머니는 “뭐가 예뻐, 젊은 네 손이 예쁘지” 하신다. 이상하게도 시어머니의 주름진 손이 예뻐 보였다. 그동안 살아 온 흔적이 손에 다 묻어나는 것 같았다. “양 손을 펴 보세요. 사진 찍어놓게” 수줍어하시면서 손을 내미시던 시어머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 시어머니의 그 주름진 손이 보고 싶다.

노영란 dynews@dynews.co.kr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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