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사우나 화염 없이 연기 꽉 차” 목욕용품 온전
화재 당시 배연창 작동 안해…집단 질식사 초래한 듯
사우나 통유리 깼더라도 불길 커졌을지 의문 계속돼
두께 22㎜ 2중강화유리…탈출용 유리사

▲ 화재로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26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현장 감식을 벌이고 있다.

(동양일보 장승주 이도근 기자)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2층 여성사우나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명이 불길이 아닌 유독가스나 연기에 의해 질식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백 드래프트를 우려해 사우나 유리창을 깨지 않았다는 소방당국의 설명에 대한 의문점이 여전히 남는 대목이다.

소방당국의 부실 대응 의혹을 규명 중인 소방합동조사단은 2층 사우나에서 희생된 20명이 불길이 아닌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화재 당시 2층 내에 연기가 유입돼 가득 찼다는 정황과 물증이 나온 것이다.

소방합동조사단 관계자는 지난 26일 화재현장을 둘러본 뒤 “2층 여성 사우나의 목욕용 의자가 심하게 그을려 있었다”며 “처음엔 몰랐을 정도인데, 이는 연기가 그만큼 꽉 찼다는 얘기”라고 했다. 2층 사우나 안에 있던 플라스틱 물바가지도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이는 결국 당시 2층에 화염이 거세지 않았고, 자욱하게 스며든 연기와 가스에 의해 여성들이 다수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당국도 지난 21일 화재 당시 사우나가 있는 2층의 경우 일부만 탔다고 밝혔다.

화재 당시 건물 내 연기와 유독가스를 밖으로 빼내는 배연창이 작동하지 않은 것도 확인됐다.

합동조사반은 27일 “화재 감지센서와 연동돼 자동으로 개폐되는 배연창이 7층과 8층에 한 개씩 설치돼 있었지만 화재 당시 스위치가 꺼져 있었다”며 “이 때문에 화재로 발생한 연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건물 내 화물승강기, 엘리베이터, 배관망, 계단이 있었는데 이를 타고 온 연기가 배연창에 막히면서 밖으로 배출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당시 2층 여성 사우나에 큰 화염은 없이 연기만 꽉 찼고, 이로 인해 20명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나온 소방 전문가의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제천 스포츠센터 2층 여성 사우나의 창고로 불법 전용돼 막혀버린 비상구 입구에 손길 흔적이 남아있다. 총 29명의 사망자 중 20명의 사망자가 이곳에서 발생했다. <소방방재신문 제공>

사정이 이렇게 되자 백 드래프트를 우려해 사우나 유리창을 깨지 않았다는 소방당국의 설명이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백 드래프트’는 화재가 발생한 내부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 문을 열거나 창문을 부수게 되면 산소가 갑자기 공급돼 마치 폭발하듯 불길이 갑자기 크게 번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화재 현장에 불길이 거세게 번진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소방당국이 2층 사우나 통유리를 서둘러 깨고 구조에 나섰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유가족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소방당국은 백 드래프트 발생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만일 백 드래프트 발생가능성이 없었더라도 불길이 천장 쪽으로 치솟는 굴뚝현상이 발생, 급격한 연소 확대 위험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화재 참사가 난 건물의 유리창이 2㎏짜리 도끼로 깨기 어려운 이중 강화유리여서 화재 진압 당시 외부에서 통유리를 깨고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란 현실론도 나온다.

충북도소방본부에 따르면 화재 참사를 겪은 스포츠센터 2층과 3층에 시공된 통유리는 2중 구조로 총 두께가 22㎜에 달한다. 일반 유리보다 5배가량 강도가 센 강화유리 5㎜, 7㎜ 두께 강화유리 사이에 공기층이 있는 구조다.

전날 오전 제거작업에서 구조대원들이 무게 2㎏짜리 구조용 만능도끼로 창틀에 남은 유리창을 후려쳤지만, 유리는 금이 갈 뿐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소방당국도 진압 당시 이 강화유리 때문에 구조작업에 애를 먹었다. 당시 진압활동을 했던 한 소방대원은 “2층에 진입하려고 사다리에 오른 상태로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도끼를 휘둘렀기 때문에 유리창 제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물론 조기에 유리창을 깨기로 결정했다면 굴절차 등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피하긴 어렵다.

이번 참사를 교훈 삼아 대형 화재에 대비해 탈출용 유리창을 도입하는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부 대형건물에는 긴급 상황 시 대피할 수 있도록 잘 깨지는 탈출용 유리를 적용하고 있지만, 중소형 상가건물은 법적 의무가 없다”며 “통유리 사용 건물에 대한 안전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양일보TV

관련기사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