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스케치] 제천, 통곡과 눈물의 성탄절…거리에는 숙연함만

(동양일보 장승주, 박장미 기자)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발생 닷새째인 25일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성탄절을 맞았지만 거리에는 숙연한 추모 분위기. 현장에는 매캐한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

남편에게 주려고 챙긴 백설기, 유품으로 돌아와

◯…이날 경찰로부터 아내 이항자(57)씨의 유품을 건네받은 제천 화재 유가족 대표 류건덕(59)씨는 가방 속에 들어있던 휴대폰 등 소지품과 백설기 두 덩어리를 보고 통곡.

류씨는 “교회 봉사가 끝난 뒤 남은 음식 중에 나를 주려고 챙긴 백설기를 가방에 넣어 두었던 것 같다”며 비통.

이씨는 지난 21일 오전 불우이웃을 위한 반찬 만들기 봉사활동을 마친 후 땀을 씻기 위해 목욕탕을 찾았다가 희생.

류씨는 “아내가 떡을 좋아 하는 나에게 주려고 챙긴 것”이라며 눈물.

백설기 두 덩어리는 참혹한 화재 현장에서 되돌아왔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을림 하나 없이 깨끗.

 

성탄절 떠난 아내…희생자 남편 눈물의 작별

○…이날 오전 6시 30분께 제천시 제일장례식장에서 화재로 숨진 29명 중 한 명인 최숙자(55)씨의 발인이 엄수. 딸을 비롯한 일부 유족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오열.

남편 박장주씨는 “아들이 지난달 결혼했는데 손주도 보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니 너무 허망하고 안타깝다”며 눈물.

 

캐럴송 실종 거리엔 추모 현수막

○…거리마다 경쾌한 캐럴송이 울려 퍼졌어야 할 성탄절이지만 역대 초유의 참사에 도시 전체가 장례식장 분위기.

화려한 성탄트리와 캐럴송 대신 거리 곳곳에는 사망자들을 애도하는 플래카드만.

화재 현장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제천은 작은 동네”라며 “건너 건너 다들 아는 분들인데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돌아가셨을 걸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며 울먹.

 

“슬픔 나눕니다” 문 닫은 상점들

○…초유의 참사에 주변 상점들도 희생자 추모에 합세.

한 상점은 ‘아픔을 나누고자 영업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부착.

사고 현장을 지키는 경찰도 가슴에 검은색 근조 리본이 매달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실내체육관 입구에 마련된 화이트보드에 추모글이 빼곡.

이날 오전 11시까지 합동분향소에는 4000여명의 추모객이 찾아 희생자를 애도.

 

“유리만 깼어도“ 제천 화재 유족 원망·질책

○…제천 화재로 졸지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지난 22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원망 섞인 쓴소리.

한 유족은 “여자들이 모여 있던 2층 사우나 통유리만 먼저 깨줬으면 거의 다 살았을 것”이라며 울분.

이어 “명백한 인재인 만큼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달라”고 요구.

 

사투 벌였지만…고개 떨군 소방관들

○…유족들 사이에서 초동 대응 부실 논란이 나오며 화마와 사투를 벌였던 소방관들도 침통한 분위기.

화재 현장 관계자들은 “지난 21일 오후 화재 발생한 뒤 제천소방서 소방관들은 며칠 동안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전언.

충북도소방본부의 한 관계자도 “구조를 기다렸던 사람을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소방관들이 침통해 하고 있다”고 피력.

 

노모·딸·손녀 함께 보낸 영결식 눈물바다

○…지난 24일 오전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노모·딸·손녀 3대의 영결식으로 온통 눈물바다.

이날 친정 어머니 김현중(80)씨와 경기 용인에 사는 딸 민윤정(49)씨, 손녀 김지성(18) 양 3대를 한꺼번에 보내는 영결식이 엄수.

특히 올해 대입 수능을 치러 장학생으로 서울의 모 대학 입학이 확정된 김 양이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며 주위는 절망.

 

이시종 충북지사 “제천 희생자 유족-공무원 1대1 매칭”

○…이시종 충북지사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과 관련 조속한 피해수습과 후속 대책을 주문.

이 지사는 “29명의 희생자의 유족과 도 공무원이 1대 1 매칭을 하는 방식으로 장례 등을 지원하라”고 지시.

또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해 생존자들은 치료에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하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재난 심리 회복 지원대책도 마련하라”고 당부.

 

분향소 찾은 소방청장…“정말 죄송합니다”

○…이날 조종묵 소방청장은 제천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

조 청장은 이날 오후 3시께 사전 예고 없이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꾸려진 제천체육관을 찾아 헌화·분향.

유가족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

 

권석창 의원 ‘통제구역’ 제천 참사 현장 출입 ‘논란’

○…자유한국당 권석창 국회의원이 출입이 통제된 화재 현장에 들어가는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을 두고 논란.

권 의원은 지난 24일 오후 화재 감식 등을 위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한 화재 현장을 찾아 휴대전화로 촬영.

한 유족은 “국회의원 신분을 내세워 현장에 들어가 사진까지 찍은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지적.

권 의원은 “현장을 찾은 것은 의정활동의 일환”이라며 “안전장비를 모두 갖추고 경찰관 입회하에 현장을 둘러봤다”고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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