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호프집·부산 노래방 화재에도 창고 이용 등 ‘안전 불감증’
골든타임 막는 ‘불법주정차’…“소방서 단속구간 지정 권한 줘야”
기본 소화 설비 관리·감독도 허술…느슨한 법규정 등 개선 필요

▲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로 아내를 잃은 한 유가족이 24일 제천체육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국화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29명의 안타까운 생명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가 과거 발생한 대형 화재사고들과 같은 ‘인재(人災)’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형 참사가 있을 때마다 각종 화재 대응방안이 쏟아지지만 그때뿐이다. 여전한 ‘안전 불감증’ 속에 기본을 지키지 않는 대형 참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99년 10월 30일 발생한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은 세간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불은 30여분 만에 진압됐으나 사망자는 56명이나 됐다. 사망자 대부분은 고교생이었다. 건물 구조변경 때문에 창문은 통유리로 바뀌었고 합판이 덧붙여 탈출이 어려웠다. 출입문은 닫혀 있었고, 계단은 폭이 1.2m에 불과했다.

2012년 9명의 희생자를 낸 부산 노래방 화재사건이나 2014년 21명이 사망한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건 당시에도 폐쇄되거나 각종 적치물로 막힌 비상구가 피해를 키웠다. 지난 21일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도 2층 여자 사우나실 쪽 비상구가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천 스포츠센터 2층 여성 사우나의 창고로 불법 전용돼 막혀버린 비상구 입구에 손길 흔적이 남아있다. 총 29명의 사망자 중 20명의 사망자가 이곳에서 발생했다. <소방방재신문 제공>

현행법은 비상구 등 대피통로를 막거나 폐쇄·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그러나 많은 업소들이 여전히 비상구를 폐쇄하거나 창고로 이용하고 있다. ‘안전불감증’ 탓이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4~2016년 신고된 비상구 관련 위반행위는 1053건에 달했다. 비상구 폐쇄·훼손이 833건(79%)으로 가장 많았고, 비상구를 전혀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 용도장애 130건(12%), 장애물을 쌓아두는 적치 69건(7%) 등으로 조사됐다.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을 막아서는 불법 주·정차 문제도 여전하다. 이번 제천 화재 때 소방차가 처음 도착한 건 신고 후 7분이 지나서다. 출동거리는 3.2㎞. 그러나 도착 후 30분가량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가장 큰 원인은 인근의 불법 주·정차였다.

소방당국은 초기진압과 인명구조의 ‘골든타임’을 5분으로 보고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화재 확산속도가 빨라져 현장진입이 쉽지 않다. 지난해 화재 1건당 사상자 수는 3~5분 출동 때 0.75명이지만 5~10분일땐 2.33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11월 30일 점포 679곳을 태운 대구 서문시장 화재나 지난 11월 11일 발생한 충주시 봉방동 포장업체 화재 때도 소방차 진입이 늦어져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관내 소방도로 확보 여부 등을 잘 알고 있는 소방서가 주·정차 단속구간 지정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인 소화설비 점검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발생한 동탄 주상복합빌딩 화재 당시 화재경보와 대피유도등, 스프링클러 작동이 정지돼 4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했다. 이번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도 건물 전층 356개의 스프링클러가 작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잇단 인재에도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지난 6~7월 부산지역 30층 이상 고층건물 362채의 특별 조사 결과 102채(28.2%)에서 소방시설 불량 169건이 적발됐다. 소화기와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 불량이 59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보설비 불량 58건, 피난설비 불량이 41건이었다.

현행법상 지방소방서와 점검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업체가 비상구 확보와 소방시설 구비 여부를 정기 점검한 뒤 시정 요구토록 규정하고 있다. 시정 요구를 받은 뒤 따르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처벌까지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다. 소방점검 대상이 되는 전국 건물만 700만 곳에 달하다보니 정밀점검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형 참사의 씨앗이 되는 이 같은 소방시설·설비 점검·관리를 가볍게 여긴다면 되풀이되는 ‘인재’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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