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선행학습금지법으로 알려진 “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달로 시행 된 지 만 3년을 넘겼다. 그 시점에서 몇몇 대학들이 대학별 고사에서 고교교육의 범위를 벗어난 문제들을 출제하여 이 법을 어긴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를 계기로 본 법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을 것은 당연한 수순일 터이었다. 이 법은 사교육의 폐단을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려는 박근혜정부의 노력의 결과로 탄생했다.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시장점유를 위한 다툼에서 열위에 서는 원인을 교과과정의 탄력성에서 찾는 이들이 있다. 공교육에서는 정해진 과정을 정해진 시간표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에 비해 사교육은 이에 관한 규제가 없이 선행학습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사교육을 선호한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따라서 이를 규제할 수 있다면 사교육의 폐해를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런 논리의 흐름에서 탄생한 이 법이 공교육정상화는커녕 선행학습 자체를 오히려 부추겼다는 평가까지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법이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공교육이 정상적이지 못해야 하고 이의 이유가 선행학습에 기인해야 하며 또한 선행학습을 규제하면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정상화 될 확률이 높다는 세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 가지는 모두 교육의 본질적 부분과는 상관없는 것들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공교육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긴 하지만 그것은 교육에 관한 개념과 근본가치의 구체적 해석에서 접근을 허용하는 문제일 뿐 교육시행의 방법적 측면에서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법 자체가 교육의 근본가치와 그 이행수단의 물질화를 통해 공교육정상화의 개념을 왜곡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선행학습이란 내용 없는 글자의 조합으로 교육의 본질에 접근할 방법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먼저 공교육이란 단어의 허망함을 들추어 보자. 어떤 아이가 ‘파란색’이 영어로 ‘blue'라는 것을 집에서 아빠에게 배웠는데 이 단어가 교육부의 영어교육과정에 속해있는 경우 이것은 공교육인가 아니면 사교육인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도 모르고 있는 제 3지대의 교육시스템인가? 교육의 본질에서 이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형식적 측면에서만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즉 학교에서 시행하면 공교육이고 그 이외에서 시행하면 사교육이라는 형태적 구분 이외에 그 어떤 방법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을 정의할 것인가?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문제는 교육이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시행되고 있는가, 아닌가에 원인을 두고 있지 않다.

또한, 선행학습이란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교육이란 것이 근본적으로 세상을 사는 기술이라는 물리적, 기능적 측면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육이 ‘기술’로 둔갑하면 기술을 아는 교사가 이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해야 할 그 무엇이 된다. 그러나 교육과 학문은 절대로 이런 측면을 가지지 않는다.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한다. 말이 학생들이고 학문이 물이며 이를 마시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학생들을 학문의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마시는 것은 학생들 자신이 스스로를 허락해야만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다. 교육은 기능적 측면 자체가 추상적이다. 시행 장소가 학교 안이거나 밖이라는 사실로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 뿐 아니라 사교육 시장도 동시에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교육이 경쟁성에서 공교육을 앞지른다고들 알려져 있다. 학원으로 대표되는 사교육의 현장에서 시행되는 것들이 교육과 학문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의미일 때 이 말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 가치를 표방하는 사교육 기관이 경제적 이윤을 얻을 기회를 우리나라에서 찾을 가능성은 없다. 현재 사교육기관들은 교육의 본질이 아니라 공교육이 만들어 놓은 왜곡된 시스템의 절대적 추종자들이다. 학교에서 시행되는 시험점수를 높이는 것 이외의 기능이 일반 사교육분야에서 시행될 수 있는 구조를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개념에서부터 그 경쟁성에 이르기 까지 이미 왜곡된 구조 안에서만 그 부정적 측면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선행학습금지법이외의 그 어떤 노력도 현재의 모습으로는 공교육정상화에 기여할 수 없다. 이 것이 이 법의 태생적 한계이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세울 수 있는 방향에서 교육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형태적 측면이 아닌 구조적 측면에서 접근되어져야만 한다. 교육의 본질적 구조 그 자체를 놓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교육개혁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질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