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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자금 전달한 7살 소년…이제는 80세 할아버지

기사승인 2017.08.13  18: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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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전체가 독립운동 투신했던 애국자 집안

광복 72년 세월 흘렀어도 30여만원 정부 지원금으로 살아가

“나라 위한 일 원망은 없어…독립 일조해 영광”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15일은 잔혹했던 일제 식민통치의 어둠을 걷어내고 대한민국이 빛을 다시 찾은 지 72년이 되는 날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던 36년의 긴 세월 동안 숱한 독립투사들은 갖은 고생을 하며 국권 회복을 위해 싸웠고 드디어 광복을 얻어냈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던 애국지사와 그 가족들의 대다수는 아직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상당수의 애국지사들은 객관적인 증빙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채 잊혀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봉원(82·사진) 할아버지도 그 중 한명이다. 그의 아버지는 초대 음성군수를 지낸 장현팔씨다. 또 최초의 여성 광복군이었던 고 신정숙 여사와 상해·만주 등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장현근 애국지사의 조카다. 신정숙 여사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장현근 지사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장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장현팔씨는 장현근 지사처럼 앞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은민하게 동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도왔다. 두 형제는 전북에서 함께 항일정신과 민족의식 고취 등 후학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특히 장현근 선생의 부탁을 받고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일 1만엔을 만들어 준 일화는 지역 내에서도 유명하다.

당시 1만엔의 독립운동 자금을 장현근 지사에게 전달한 사람이 바로 7살의 나이였던 그의 조카 장 할아버지다.

“독립자금을 전달했다는 것도 10살 때 알았어요. 어느 날 작은아버지(장현근 선생)께서 ‘봉원이가 아주 큰일을 했어’라고 말씀하셨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몰라 ‘숙부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되물었어요. 그랬더니 7살 때 작은아버지한테 전한 스케이트 자루에 독립운동 자금 1만엔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죠.”

장 할아버지는 7살 때 중국 장백시 세무국장이던 아버지와 함께 세무서 관사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게이조 오지상(경성 숙부)’에게 갖다 주라며 스케이트 자루를 건넸다고 한다. 장 할아버지는 당시 독립운동을 하느라 한창 떠돌아다니던 동생이 안타까워 아버지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전해주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장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준 자루를 품에 안고 대문 밖을 나서는 순간 어릴 적 불리던 이름인 ‘시게짱’하며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바로 ‘게이조 오지상’ 장현근 지사였다.

당시 장현근 선생은 안창호 의사 등과 함께 상해에서 체포돼 서울로 압송, 그곳에서 극심한 고초를 겪다가 안창호 의사의 극구 부인으로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전국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일본의 추적을 받고 있던 장현근 지사는 혹시라도 형의 가족에게 변고가 생길까 싶어 조카가 대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스케이트 자루를 받아 들고 바로 사라졌다.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온 작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비로소 그 때 그 자루에 담겨 있던 것이 ‘요깃거리’가 아닌 독립운동 자금 1만엔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1940년대 1원이 현재의 1만4000여원 가치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1만엔은 140억정도가 된다. 원래 그 돈은 고향인 음성에 땅을 구입할 목적으로 모아둔 것이었다고 한다.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 뒤 발생한 6.25전쟁으로 모두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장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그 때 그 돈으로 차라리 땅을 샀더라면 이렇게 힘들진 않을 텐데….’라며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장 할아버지 역시 정부에서 지원하는 16만원, 부인 앞으로 나오는 지원금 16만원 등 모두 32만원으로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음성군 음성읍 신천 2리에 있는 장현근·신정숙 부부의 본가는 현재 장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다. 이 집에는 김구 선생이 신정숙 여사에게 써 준 글씨와 김구 선생, 신정숙 여사 등 광복군 수뇌부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장 할아버지는 팍팍한 삶이 힘겨워 아버지의 선택에 대해 원망과 아쉬움을 토로할 법도 하건만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원망할 자격도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원망을 하겠어요.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인데 감히 불평해서야 되겠습니까. 다만 독립에 일조할 수 있어서 영광이고 기쁩니다.”

장 할아버지처럼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애국지사와 그 가족들이 아직도 많이 생존해 있다. 그러나 그들의 헌신에 정부의 보상은 턱없이 적어 지금도 그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물질적인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후대들이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박장미>

박장미 기자 pjm8929@dynews.co.kr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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