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재 <전 청주농고 교장>

부탄(BHUTAN)왕국을 향하기 전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제까지 결코 적지 않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여행을 주선한 청주 푸른여행사에서 보내준 여행준비물 목록 첫 줄에 튜브형고추장,김,오징어채,깻잎,컵라면, 햇반 등을 준비하라는 내용이 눈에 거슬렸다. 여행사로 전화를 했다. 준비물 10가지 중 먹을거리를 제일먼저 제시한 까닭이 있을 것이어서 캐물었더니 채식을 주로 하는 국가여서 만약을 위한 배려란다. 언제나 현지식에 잘 적응하는지라 배려차원이겠거니 하며 짐을 챙겼다.

‘용의 나라’라는 뜻을 지닌 부탄, 얼마나 가고 싶었던 곳인가. 이 지구상에 어쩌면 마지막 남아있을 지도 모르는 친자연주의 국가요, 행복지수(GNH) 1위라는 곳이 아닌가. 더구나 젊은 국왕이 영국의 명문대를 나왔고 왕이 된 후 왕궁을 버리고 거처를 만들어 부인과 자전거로 민정을 살피며 다닌다는 탈 권위의 상징이 되어있다는 나라가 아닌가. 더구나 올 해는 한-부탄수교 30년이 되는 해여서 올 초 부탄 관광성에서 한국에 와 한국관광객들에게 여행비 할인 등 특별한 예우를 하겠으니 많이 와 달라는 주문을 하고 갔다는 뒷소문도 돌았었다. 그리하여 한 여행사는 전세기를 띄우기로 했고 그 전세기의 탑승객이 되어 나는 8시간의 비행시간을 요하는 직항의 편의를 제공받게 되는 것이었다. 저녁 7시에 떠난 부탄항공기는 이튿날 낮 12시30분에 파로국제공항에 안착했다. 3시간의 시차는 있었으나 5박6일간의 짧은 일정이어서 도착과 함께 관광에 나섰다. 해발 2400미터에 건설됐으며 세계에서 신호등이 없는 유일한 수도라는 팀푸로 이동하자마자 국립도서관과 정부종합청사와 불교사원이 건물의 반반씩을 나눠 쓰고 있는 타쉬쵸 사원을 돌아보았다. 이때부터 우리 일행은 의아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립도서관은 한국의 중학교 도서관만도 못한 장서보유와 서가정리는 물론 빈 서가가 대부분이어서 국립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저녁에 팀푸의 시장과 거리를 돌아보며 하수구의 악취와 파손된 덮개들이 행정부재를 드러내 주었다. 여행 3일째 우리는 파로시로 이동했고 우리를 기다린 호텔은 마무리 공사도 채 끝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가 손님맞이를 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화나게 했던 것은 첫 끼부터 마지막 끼 까지 천편일률적인 메뉴의 음식이었다. 이마다쉬라는 현지고추와 부탄의 치즈를 섞은 것을 비롯해 자샤 마루라는 매콤하고 잘게 썬 닭고기와 토마토 등이 섞인 음식 등이고 모모라는 만두가 나오면 특식이었다. 매일 똑 같은 음식, 그나마도 나중 사람은 먹을 것이 번번이 모자라는 부폐인데 식욕이 좋은 편인 나까지도 음식에 질려 싸가지고 간 라면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여행사의 주문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부탄이 자랑하는 제일의 사원은 파로에 있는 탁상사원. 골짜기 바닥에서 792미터의 높은 절벽 위에 1694년에 완공된 이 사원은 그 정교함과 신비함이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바위에 하얀 회칠의 벽과 금박을 입힌 지붕의 사원들이 여러 개 층과 겹을 이루며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눈길을 끄는 이 사원이름인 ‘탁상’은 ‘호랑이 보금자리’라는 뜻이란다. 그런데 이 놀랄만한 사원을 오가는 먼 길에 각국의 수많은 관람객들이 오고 가는 데도 화장실 하나도 없어 비싼 여행비를 내고 온 외국관광객들이 불만을 토로할 수 밖에. 부탄에 머무는 동안 돌아본 사원마다에 불상과 함께 현재 37세인 국왕 지그미 케사 남젤 왕추크의 초상이 세워져 있거나, 심지어는 정부건물 정문 한 복판에 이 국왕의 돌백이 아들 대형초상이 걸려있음을 보아야 했다. 정체는 입헌군주제인데 왕의 세습을 노리는 획책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사고 있어 ‘친 환경에 권력을 내려놓은 멋진 국왕의 나라’를 연상했던 이미지는 여지없이 얼룩이 졌다. 부탄이 ‘용의 나라’가 아니라 ‘왕의 나라’임을 확인한 듯한 이번 여행의 불쾌감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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