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지역 학생 비상연락망 가동 안 돼
대피시설 기거 등 학생 현황파악 없어
범람·침수 따른 통학·안전 매뉴얼 전무

▲ 18일 오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침수 피해 주민들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엄마, 아빠와 함께 밥 먹고 싶어요.”

18일 낮 12시께 청주시 흥덕구의 한 초등학교 앞. 책가방을 둘러매고 교문을 나서던 초등학생 A(9·3년)군은 풀이 죽은 얼굴로 “집에 가면 밥도 먹기 어려운데…”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 폭우로 A군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옷가게가 물에 잠겨 A군은 점심을 챙겨달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비슷한 시간 만난 B(9·3년)양의 형편도 비슷했다. B양은 “어제, 오늘은 집에서 밥을 먹지 못했다. 엄마가 학원가면서 (점심으로) 빵 사먹으라고 돈을 줬다”고 말했다. 이번 폭우로 B양의 집 안은 진흙으로 가득 차는 피해를 입었다. B양의 가족은 인근 모텔에서 기거하며 끼니는 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다.

22년 만에 최악의 홍수 피해를 가져온 이번 폭우는 ‘동심(童心)’에도 쉽게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 많은 학생들이 직·간접 피해를 입으며 일부 학생들이 점심 등 식사를 거르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주말 청주와 괴산, 증평 등 충북 중부를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져 현재 205가구 44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일부는 귀가했으나 247명은 여전히 마을회관 등 대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시간당 최고 91.8㎜의 물폭탄이 쏟아진 청주에선 하천 범람으로 복대동 등 일부 저지대가 물에 잠겼다. 이 지역의 일부 아파트는 전기와 수도가 끊겨 입주민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씻지도 못하고 땀에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등교하는 학생도 적잖다.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사정에도 충북도교육청이 학생 안전을 위한 별다른 조치 없이 안일한 태도로 일관, 빈축을 사고 있다. 도교육청과 도내 10개 교육지원청은 물론 일선 유·초·중·고등학교에서도 폭우 피해 학생들의 실태 파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폭우 당시 피해 학생들에 대한 비상연락망 역시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안전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학생들이 수업 대신 청소 등 학교복구에 매달린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학부모는 17일 밤 SNS에 “아이가 다니는 교실 등이 침수 피해를 입어 학생들이 청소 등 복구에 동원돼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까지 도교육청이 파악했다는 피해상황은 달랑 교육시설물 피해 현황뿐이다. 그나마도 지난 16일 오후 5시 이후엔 별다른 발표가 없다가 취재가 이어지자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내고 이날 오후 4시 기준 35개교와 직속기관 2곳, 폐교 4곳 등 41개 시설이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피해 복구비용을 15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이달 중 피해현황을 조사한 뒤 다음달부터 3,4분기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대금, 교복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폭우 피해 학생을 지원·관리하는 매뉴얼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제주도교육청이 지난 6월 ‘하천 범람·침수대비 학생통학 매뉴얼’을 마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제주교육청은 사전대비, 하천 범람·침수 전, 범람·침수 시, 상황 종료 후로 나눠 도교육청·학교·직속기관 별 대응·조치사항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이 매뉴얼에는 휴업·단축수업 결정 및 통보, 범람·침수지역 거주학생 비상연락망 가동과 재난 시 안전 확인, 위험로 차단과 통학로 확보를 위한 유관기관 협조 요청, 태풍·집중호우 시 행동요령 교육 등의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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