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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 6.25전쟁, 죽어서 말 못하는 영웅들이 남긴 승리 <이상주>

기사승인 2017.06.19  21: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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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주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6.25전쟁은 죽어서 말 못하는 영웅들이 남긴 승리다. 군인은 전쟁에 나가면 필승해야한다. 화랑오계(花郞五戒) 네 번째 계율이 임전무퇴다. 조일전쟁 때 이순신장군은 필사즉생(必死則生)을 강조했다. 6.25전쟁은 안타깝게도 휴전이라는 미완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필사필승정신으로 싸워서 얻은 것이다.

6.25전쟁 때는 물론이요, 순국하신 분들은 호국성인(護國聖人)으로 예우해야한다. 우리는 그 호국정신을 이어받아 호국정신과 반공의식을 견강히 해야한다.

6.25전쟁기간 중에 호국사례를 들어보자. 보병 제9사단이 철원의 요충지인 395고지에서 중공군과 격전했다. 이때 산화한 육탄 10용사들의 필사즉생의 승리는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교과서에도 실렸다.

순국한 사례와 승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 사례에 대해 편의상 필자가 아는 사례를 들어본다. 첫 번째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이화령전투다. 국군 제6사단이 1950년 7월 13일부터 7월 16일까지 북한 1사단의 남진을 지연시킨 전투다. 아군이 이동하도록 엄호사격을 맡은 제6사단 2연대 4중대장 김용하(1926~1950)소령은 북한군이 쏜 포탄에 맞아 이화령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두 번째, 동아일보에 보도된 기사내용이다. 태백중학교 학도병들은 1951년 1월 육군 3사단 23연대에 자원입대했다. 이들은 5일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1월 20일 최전선에 투입됐다. 학도병들은 1951년 영월 녹전지구(1월 26일), 인제 상탑지구(5월 16일), 1952년 748·949고지 탈환(2월 3일), 1953년 가칠봉·748고지(2월 2일), 김화지구전투(5월 30일) 등에서 공을 세웠다. 127명 중 18명이 전사했다. 16명의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세 번째 필자의 고향 괴산군 사리면 화산리 도촌에도 6.25전쟁 중 전사한 군인이 4명이다. 정순옥(鄭淳玉)과 정순일 형제가 산화했다. 김지일(金知一1935,2,4~1952,5,2)은 강원도 철원지구전투에서 승천했다. 이은수(李殷壽)는 경북 영천지구 전투에서 1950년 8월 30일 산화했다. 필자가 어렸을 때 들을 기억이다. 이은수는 휴가를 나왔는데 귀대하라는 통지가 왔다 한다. 동네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했다한다. 그러나 가야한다고 하며 갔단다. 그리고 전사했다. 이것이 군인정신이다.

네 번째 참전하여 부상당한 사례이다. 임대환(林大煥)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에서 태어났다. 6연대 수색대에 배속되어 네 번째 전투에서 중공군과 전투하다가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다. 다섯 번째 전투에서 어깨 두 곳에 총상을 입었다. 대구국군병원에서 치료받고 수색대로 돌아오니 아는 사람이 반도 안 됐다고 한다. 화랑무공 훈장 3개를 받았다. 돌아가실 때까지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다섯 번째 동락초등학교 여교사 김재옥은 학교에 집결한 북한군의 동향을 국군에게 알렸다. 1950년 7월 4일부터 7일까지 충주시 신니면 동락리 일대에서 국군 6사단 7연대가 북한군 15사단 48연대와 싸워 승리했다. 이 실화를 ‘전장과 여교사’라는 영화로 재현했다. 1965년 괴산군 사리면 이곡리에 자리잡은 화곡초등학교에서 촬영했다.

필자가 초등학교 3학년시절 쯤 고향 도촌 서낭당 느티나무 아래서 수류탄 탄피를 주었다. 순간 잘 두어야한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때 마침 엿장수가 와 있었는데, 잠깐 보자고하고는 자기에게 달라고하며 돌려주지 않았다. 얼른 엿 한 조각을 떼어주며 받으라했다. 내성적이라 안되는되유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강력하게 안된다는 말을 못했다. 지금 같았으면 강력하게 돌려달라고해서 보존했을 것이다. 그 무렵인가 면사무소에서 6.25전쟁 잔존 무기류를 발견하면 신고하라는 안내벽보를 배포했다. 이종길네집에서는 철모를 똥바가지로 사용했다. 이렇듯 6.25의 흔적은 꽤 오래 동안 남아있었다.

일부 교육자들은 6.25는 남한이 북한을 침공한 것이라 가르친다고 한다. 남한이 북한으로 하여금 침공하게 만들었다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남의 다리가 잘려 나간 것보다 내 손가락에 가시가 박힌 것이 더 아프다. 총알이 자기의 심장을 관통해야 죽는 줄 안다.

전쟁엔 불변의 철칙이 있다. 전쟁에는 승리만이 있을 뿐, 비겁하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북한은 지금 핵무기와 장거리탄도탄 제조기술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호국성인(護國聖人)들에게 감사하고 이다음 천상에 가서 그분의 환한 미소로 환영을 받으려면, 반공정신으로 무장하고 전쟁을 할 때는 필승정신으로 싸우고 인생에 있어서는 필성(必成)정신으로 살아라.

동양일보 dynews@dynews.co.kr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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